그러나 개인적으로 그 날은 두 달 넘게 준비해왔던 케이크 디자이너 실기시험일이기도 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주관하는 국가 자격증 시험인 제과기능사, 제빵기능사와는 달리 케이크 디자이너는 협회에서 주관하는 민간 자격증이라 응시료도 훨씬 비싸고, 실기시험에 필요한 도구들도 대부분 직접 챙겨가야 할 것이 많아 시험 한 번 보려면 짐이 한가득이다. 학원 선생님들은 차를 가지고 가라고 하셨고, 나 역시 합금재질의 묵직한 턴테이블과 아이스팩 두 덩이의 무게를 가늠해 본 후 차를 가져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런데 문제는 시험이 치뤄지는 신길동 한국제과학교까지 차를 몰고 가는 여정이었다. 영등포 쪽으로는 단 한 번도 직접 차를 몰아본 적이 없어서, 네비게이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D사의 로드뷰 서비스를 이용해 자동차 길 찾기를 시도해봤는데, 동부간선도로나 강변북로 등의 자동차 전용도로를 이용한 길 찾기가 되지 않아 불편했다. 결국 몇 차례의 시도 끝에 포기하고, 구입 후 단 한 번도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았던 나의 아이나비를 믿어보기로 했다. 9시까지 입실이었지만 초행길이라 서둘러 7시 20분쯤 출발했고, 뻥뻥 뚫리는 일요일 아침의 도로사정과 나의 똑똑한 아이나비 덕분에 채 8시가 되기도 전에 시험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주차로, 한국제과학교 관계자들이 수험생의 주차장 이용을 불허하여 애를 먹어야만 했다. 다행히 조기축구를 하고 돌아오던 인근 주민의 배려로 그 분의 상가 앞에 주차를 할 수 있었다. ^-^
주차 문제를 해결한 후 시계를 보니 겨우 8시 10분이었다. 입실시간인 9시까지는 50분이나 남았지만 이미 시험장에는 10명 이상의 수험생들이 도착하여 시험장 입구 계단에 삼삼오오 짝을 지어 앉아 긴장을 풀고 있었다. 수험표와 공고문(?)을 맞춰보며 내가 들어가야 할 시험장을 확인했다. 일행이 없었던 나는 혼자 있기가 뭣 해서 홀로 시험장에 들어가봤다. 테이블 위엔 3호 케이크 받침 위에 3호 시트가 마르지 말라고 뒤집어 있었고, 중간 사이즈의 스텐볼 1개와 고무주걱 한 개가 놓여있었다. 그렇게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운영위원 2명이 들어와 골드라벨을 테이블 위에 놓기 시작했다. 잠시 후엔 3주간 다니다 그만뒀던 H학원 데코 선생님이 불쑥 들어왔다. 어색하게 있다가 인사를 하고... ㅋㅋㅋ 그런데 그 선생님 3개월 전에 수업 받았던 나를 기억하고 인사를 받은 것이었을까? 뜬금없이 궁금하다. 그 선생님도 운영위원으로 참여하는 듯 공포의 캐러멜 색소를 중탕용 냄비에 부어 비치해두었다. 시험장을 나와 제과학교 1층 로비를 기웃거리다가 다리가 아파 내가 시험을 봐야 하는 제 1 교실 옆, 필기시험을 봤던 교실로 들어가 앉는데, 지금 다니는 학원에서 같이 데코 수업을 들었던 조 모 형님이 보였다. 그 분이랑 취업 문제랑 시험 준비 상황 등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9시 10분 전에 시험장으로 들어왔다. 위생복, 앞치마, 위생모자까지 세팅하고 전원을 꺼뒀던 휴대전화를 켜고 시험장에서 지급하는 품목을 찍은 후 다시 전원을 껐다.
시험장에서 개인 당 지급되는 품목은 3호 케이크 시트와 3호 케이크 받침, 믹싱볼 1개였고, 2인 1조로 테이블과 골드라벨 1통, 고무주걱 1개, 믹싱기 1대가 주어졌다. 거품기는 시험장 한 구석 기구들이 모여있는 랙에 비치되어 있었지만 2인 1조로 돌아가기에도 턱 없이 부족한 양이었고 멀쩡한 녀석들도 별로 없어 보였다. 그러므로 개인 준비품목 외에 거품기를 챙겨가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믹싱볼 역시 1~2개 정도 더 챙겨가는 게 좋고, 생크림 원액과 선 그릴 것, 2가지 색소를 섞을 것에 대비하여 종이컵 4개와 1회용 숟가락 3개 정도를 추가로 챙기면 작업성이 훨씬 좋다. 옆면 장식과 장미를 짜는데 쓰이는 모양깍지 역시 미리 짤주머니에 넣어서 세팅해오면 편리하다. 짤주머니에 깍지 넣는 것 정도야 대수롭지 않은 작업이지만 그래도 미리 준비를 하면 여유가 있어서 좋다.
9시 30분이 되었지만 아무도 들어오지 않아서 나를 비롯한 수험생들은 위생복을 챙겨입으며 출입문만 뚫어져라 바라봤다. 40분이 좀 넘은 시각 드디어 나이가 좀 있어보이는 운영위원이 수험표와 번호표 꾸러미를 가지고 들어오셨다. 가지고 오신 수험표 순으로 수험생을 호명하여 수험생이 가지고 온 수험표와 신분증을 확인한 후 번호표를 뽑도록 하여 기재한 후 수험생에게 확인 서명을 하라고 하셨다. 내가 뽑은 번호는 114번이었다. 테이블에는 번호가 없어서 운영위원이 출입문 → 개수대 방향으로 번호를 지정해줘서 자리 이동 및 개인 준비품목 꺼내기 등 잠깐 어수선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잠시 후 운영위원이 나가고 40대 정도로 보이는 감독위원 두 분이 들어오셨다. 요구사항이 적힌 4장짜리 프린트물을 나눠주고, 요구사항을 다시 한 번 구두상으로 전달하고, 드디어 9시 57분 시험이 시작되었다. 2시간 동안 치뤄지는 시험이라 감독위원은 11시 57분까지 끝내면 된다고 알려주셨다.
*그 날의 요구사항은 이랬다.
1. 아이싱 → 돔 형
2. 옆면 하단 → 중 or 대 별깍지를 이용한 쉘 짜기 (이중색 ×, only 생크림으로만)
3. 선 →
다행히 감독위원이 캐러멜 색소 없이 생크림으로만 짜도 된다고 하셨다! ^^ 그러나 너무 늦게 알려주셔서 이미 색소 넣은 되직한 크림과 사투를 벌이며 작업중인 분이 많았다. -0-
4. 장미 → 분홍색과 하얀색 이중색으로 조화롭게 3개
(보통 대, 중, 소 1개씩으로 3개를 완성한다)
이런 느낌으로 ↑ 꽃잎 윗부분만 분홍색이 들어가도록 이중색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난 색소를 너무 많이 넣어서 촌스런 형광 분홍색이 됐다... OTL
5. 잎사귀, 줄기 → 녹색 1가지 or 녹색+하얀색 이중색 선택,
수량은 정해진 바 없이 조화롭게~
6. 글씨 → 축 어버이날 (캐러멜 색소를 이용하여 초콜렛색으로 쓸 것)
돔형 아이싱과 쉘을 짜는 것까지는 괜찮았다.
순조로운 출발이라며 좋아했던 건 여기까지였다. ㅋㅋㅋ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낑낑 대며 손 믹싱으로 휘핑을 했다.
먼저 생크림 원액을 조금 덜어내고, 50% 휘핑하고 또 조금 덜어내고, 80% 휘핑하고 또 조금 덜어냈다. 손으로 믹싱을 한 건 나와 내 앞 사람 달랑 2명이었던 것 같다.
(돔형은 80% 까지 휘핑해야 작업성이 좋기 때문에 생각없이 믹싱기로 100% 휘핑했다간 큰 낭패를 본다. 믹싱기를 쓴다면 50% 까지만 휘핑하고 손으로 휘핑하는 게 좋다)
50% 휘핑하고 덜어낸 크림에 80% 올린 것을 아주 조금 섞은 후 선을 그렸다. 출발은 괜찮았지만 도중에 끊어지고 이어붙이고를 반복하여 캐러멜 소스를 섞지 않았음에도 매우 지저분하게 완성되고 말았다. ㅠ_ㅠ
다음은 공포의 장미 짜기!
80% 휘핑하고 덜어놨던 것에 분홍색소를 섞는다는 게 그만 과했다. 다행히 실습 때 그렇게나 속을 썩였던 짤주머니에 이중색 넣는 건 잘 됐지만 묽은 색소가 과해서 색도 형광색이 났고 크림 되기가 약해 장미 꽃잎이 조금 무너졌다... -0-
설상가상 장미를 케이크에 얹다가 선을 건들여서 잎사귀로 그 부분을 메우느라 케이크가 그만 잎사귀 동산이 됐다... 난 몰라... 물론 잎사귀 역시 녹색 색소 사용이 과다하여 크림 되기가 약해져 무늬가 실종됐다.
드디어 마지막 관문 글씨 쓰기.
언제나 그렇듯이 "축" 자 하나는 잘 썼다, 큼직하게~ 그런데 어버이날을 가로로 쓰라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작게 썼다. 균형감 상실...
어떻든 시험 끝. ^_^
테이블 정리가 끝나고 설거지를 하려니 씽크대에 줄이 너무 길어서 키친타올과 행주를 이용해 대충 처리하고 비닐봉투에 담아버렸다. 일단 차에 싣고 뒷정리는 집에서 편하게 해도 되니까...
(차를 가져갔더니 주차 문제 빼곤 모든 게 편하다 ㅎㅎㅎ)
제과 & 제빵 필기 각각 1번씩, 제과 실기 2번, 제빵 실기 3번, 데코 필기까지...
지난 1년간 뚝섬 동부지사와 신길동 제과학교를 오고가며 본 시험이 무려 8번이다.
8번 시험의 응시료하며, 그 동안 학원비 포함하여 든 돈은 또 얼마인가! T_T
솔직히 이제 시험이라면 징글징글할 정도.
부디 뜻 깊은 현충일에 보는 케이크 디자이너 실기시험이 제과 관련 마지막, 9번째 시험이길 바란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