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절대 오고 싶지 않았던 업계 쪽에, 그것도 힘들게 직장을 구해 2년 가까이 흘렀다. 지금 직장에는 노조가 있다.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분위기. 노조비가 쬐끔 아까웠지만 당연하다 생각하고 가입을 했다. 왜냐면, 지금은 철도공사로 바뀐 철도청 공무원 신분이었던 아빠가 노조 간부였다. 내 기억에 철도청 노조는 기가 셌었다. 엄연한 공무원이면서 파업을 했을 정도니까. 그 때 아빠도 여러 번 경찰서를 들락날락 했었고, 아빠가 일 했던 모 철도사무소 노조위원장은 속된 말로 잘렸는데, 창업을 한 그 분을 돕느라 물건 여러 개를 구입한 아빠와 엄마는 부부싸움깨나 하셨었다. 어쨌든 이런 인연으로 난 노조에 우호적인 사람으로 성장했다. 여름인가?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회사에서 용역회사를 동원해 노조를 무자비하게 탄압해서 크게 사회 문제가 됐었다. 그 일을 '그것이 알고 싶다' 를 통해 자세히 알게 된 후 경악했다. 그 순간 대.오.각.성. "그래, 노조는 저런 사람들이지. 힘 없는 노조원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싸우는 사람들!" 안타깝게도 우리 회사 노조는 그런 단체가 아니었다. 말로는 노조원들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지만 내 보기엔 자신의 입신을 위해 충성을 다한 한 남자의 성공(본사 노조 쪽으로 스카우트), 이 회사가 직장생활의 처음이자 끝인 나이 지긋한 주부사원들(→ 절대 폄하는 건 아니다. 우리 엄마도 당당한 주부사원이다)의 친목단체... 어라? 이건 아닌데...
우리 회사 노조에 대해 할 말은 많지만 얘기가 너무 길어진 것 같아서 이만 생략... 이렇게 노조에 대한 불만이 증폭되던 나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책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의자놀이> 다.
<이미지 출저 : Yes 24>
난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공지영 작가의 신작 소설인줄 알았다. 공지영 작가의 초창기 책들(매번 운동권이 등장해서 나와 괴리감이 컸던)은 솔직히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도 우리 집에는 공지영 작가의 책들이 많다. 예전 MBC 책을 읽읍시다에 소개되었던 <봉순이 언니> 를 비롯해서 <우리들의 아름다운 시간>, 그 유명한 <도가니>, 그리고 이 책 <의자놀이>. 내가 소장하고 있는 공지영 작가의 책들에는 80년대 치열였던 운동권 학생이 등장하지 않는다. 나는 소외된 운동권 출신들의 이야기 말고도 사회적으로 이슈 있는 사건들을 끝없이 소설화 해내는 지금의 공지영 작가가 훨씬 좋다. ^^
정의는 그 안에 분노를 지닌다.
정의에서 나오는 분노는 진보의 한 요소가 된다.
- 빅토르 위고, <레미제라블> 중에서
(공지영 첫 르포르타주 쌍용자동차이야기 <의자놀이> 에서 발췌)
첫번째 장 '7분간의 구조요청' 을 읽는 도중에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일단 책 읽기를 중단했다. 작가로 데뷔한지 20년도 넘은 노련한 공지영 작가의 생생한 필력에 질식할 것 같았다. 그저 "아.." 하는 탄식뿐... 나는 책을 읽으며 피해자가 오 모씨에게 당하는 그 순간으로 순간이동을 하고 말았다. 그리곤 늑장 대처를 한 경찰에게 새삼스레 화가 났다. 다시 책 읽기를 시작했다.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또 책 읽기를 중단했다. 어쩌다 보니 故 조영래 변호사의 생전 글 모음집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 둘 수는 없습니다> 를 읽게 됐고, 자연스레 그가 쓴 <전태일 평전> 도 읽게 되었다. 난 다시 70년대 숨 쉬기조차 힘든 먼지 속에서 제대로 숨 쉬기는 커녕 밥 먹을 시간조차 아껴가며 밤새 일했던 노동 현장으로 순간이동을 했다. 답답했다. 그 때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겠지만 여전히 일터에서의 삶은 고단 그 자체니까. 이런식으로 1시간 남짓한 출근길에 겨우 첫번째 장 하나를 읽었다.
퇴근길에 다시 책을 펼쳐들었다. '13번째 죽음' 부터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까지 읽어 내려가는 동안 두어번 책 읽기를 중단했다. 솔직히 쌍용차 해고 사태로 이렇게나 많은 이들이 자살을 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이렇게 심각한 문제라고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내 자신이 창피했다. '이 사회가 정상일까?' 대목에 이르러서는 분노가 치밀었다. 정말 왜 모두들 조용히 있는 것일까? 쌍용차가 더 이상 우리나라 사람 소유의 회사가 아니고, 인도 회사여서 그런 것일까? 그래도 자국민이 이토록 고통을 겪는데... 내가 노동법을 모르는 건지... 아니면 우리 사회가 암묵적인 침묵을 강요하고 있는 것인지... 것도 아니라면 하필 현재 우리나라 경기가 너무 안 좋아서 남의 불행 따위엔 신경 쓸 여력이 없는지도...
일터는 단지 먹이를 구하기 위해 가는 장소가 아니다. 돈만 벌면 어디든지 다 좋다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터, 우리에게 생활을 보장해주고, 우리에게 밥과 의복을 주며, 사람들을 엮어내서 인간의 사회적 욕구를 펼치게 해주는, 우리의 품위와 자부심, 그리고 긍지를 주는 내 인생이 펼쳐지는 현장이다. 가정과 직장, 이 두 들판이 우리의 인생인 것이다. 그리고 가정이 무너지면 가끔 직장생활도 무너지지만, 일터가 무너지면 가정은 거의 대부분 무너진다. 아무런 사회안전망, 즉 재취업과 실업보험, 혹은 무상교육, 무상의료, 주거 등에 대한 약속 없는 정리해고는 삶에서 해고된다는 말과 같다.
(공지영 첫 르포르타주 쌍용자동차이야기 <의자놀이> 에서 발췌)
너무나 마음이 복잡하다. 답답하다. 속이 터진다. 영화 <26년> 을 보고 났을 때처럼 분노가 치밀어 죽겠다. 쌍용차 노조와 전혀 다르게, 회사에게 아무 말을 못하는 우리 회사 노조. 그런 노조에게 내 목소리조차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내가, 쌍용차 사태에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인지도 모른다. 이름은 똑같은 "노조" 인데 어쩜 이리 다를까?
12월 19일, 대통령 선거일까지 달랑 8일 남았다.
소위 진보 → 보수로 정권이 바뀐 후로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대통령이 바뀌면 당장이라도 경제가 살아나고 일자리가 마구 생길 줄 알았던 사람들... 그 당시에도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의 결과를 보면... 어이가 없다.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할 수 있을까? 그것도 젊은 사람들이... 쯧쯧... (한편으론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을까 싶기도 하다) 작금의 대한민국을 돌아보자. 어느 진영이 되더라도 쉽사리 경제가 살아날 여지는 없어 보인다. 모두 복지를 논하고, 하나같이 반값 등록금을 말하지만 대체 뭔 돈으로 하겠다는 건지 납득이 안 된다, 납득이. (대학 등록금 자체를 낮출 생각은 아무도 안 한다) 배부른 소리한다고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적어도 지금보다는 좀 더 자유로운 세상이 좋다. 쇠고기 먹기 싫다고 촛불시위 했다고 잡혀가고, 부정적인 경제 견해를 밝혔다고 잡혀가고... 적어도 이런 사태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유권자들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니 부디 적극적인 현실 참여는 하지 않더라도 <의자놀이> 같은 책들 읽으시고, 지금 우리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도는 인식하는 현실 감각은 잃지 말자구요! 영.특하고 세.련된 민.주시민이 되어봅시다!
"함께 살자,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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