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놀이

2012. 12. 11. 18:02 | Posted by 너부리7
내가 직장생활 한 지도 십년이 훌쩍 넘었다. (자세한 연차는 나이를 유추할 수 있으므로 공개 불가 ㅋㅋㅋ) 내 이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모 포털사이트에는 노조가 없었다. IT업계나 인터넷 쪽의 알만한 기업들은 일반기업에 비해 회사 복지나 기타 처우가 좋은 편이다. 때문인지 노조의 필요성은 거의 느끼지 못했다. 급여야 연봉제니까 불만이야 당연히 있었지만, 한참 활황기였을 때에는 연말에 특별 보너스라든가 해외 워크샵 등의 보상이 주어졌으므로, 어느 정도 위로를 받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랬다. 잘 나가는 동료들을 보며 의지를 불태운 적도 있었고, 주목받을 뻔한 기회도 있었지만 잘 살리지 못했다. 그러다 한 동료와 매우 친해졌고, 그녀와 동업으로 창업을 하자는 도원결의(?) 끝에 회사를 뛰쳐나왔다... 그리고 2년이 흘렀다. 동업? 창업? 다 물 건너 갔다. 내 경력은 단절되어 원래 일 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슬프다.

개인적으로 절대 오고 싶지 않았던 업계 쪽에, 그것도 힘들게 직장을 구해 2년 가까이 흘렀다. 지금 직장에는 노조가 있다.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분위기. 노조비가 쬐끔 아까웠지만 당연하다 생각하고 가입을 했다. 왜냐면, 지금은 철도공사로 바뀐 철도청 공무원 신분이었던 아빠가 노조 간부였다. 내 기억에 철도청 노조는 기가 셌었다. 엄연한 공무원이면서 파업을 했을 정도니까. 그 때 아빠도 여러 번 경찰서를 들락날락 했었고, 아빠가 일 했던 모 철도사무소 노조위원장은 속된 말로 잘렸는데, 창업을 한 그 분을 돕느라 물건 여러 개를 구입한 아빠와 엄마는 부부싸움깨나 하셨었다. 어쨌든 이런 인연으로 난 노조에 우호적인 사람으로 성장했다. 여름인가?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회사에서 용역회사를 동원해 노조를 무자비하게 탄압해서 크게 사회 문제가 됐었다. 그 일을 '그것이 알고 싶다' 를 통해 자세히 알게 된 후 경악했다. 그 순간 대.오.각.성. "그래, 노조는 저런 사람들이지. 힘 없는 노조원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싸우는 사람들!" 안타깝게도 우리 회사 노조는 그런 단체가 아니었다. 말로는 노조원들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지만 내 보기엔 자신의 입신을 위해 충성을 다한 한 남자의 성공(본사 노조 쪽으로 스카우트), 이 회사가 직장생활의 처음이자 끝인 나이 지긋한 주부사원들(→ 절대 폄하는 건 아니다. 우리 엄마도 당당한 주부사원이다)의 친목단체... 어라? 이건 아닌데...
 
우리 회사 노조에 대해 할 말은 많지만 얘기가 너무 길어진 것 같아서 이만 생략... 이렇게 노조에 대한 불만이 증폭되던 나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책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의자놀이> 다.

                                               <이미지 출저 : Yes 24>


난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공지영 작가의 신작 소설인줄 알았다. 공지영 작가의 초창기 책들(매번 운동권이 등장해서 나와 괴리감이 컸던)은 솔직히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도 우리 집에는 공지영 작가의 책들이 많다. 예전 MBC 책을 읽읍시다에 소개되었던 <봉순이 언니> 를 비롯해서 <우리들의 아름다운 시간>, 그 유명한 <도가니>, 그리고 이 책 <의자놀이>. 내가 소장하고 있는 공지영 작가의 책들에는 80년대 치열였던 운동권 학생이 등장하지 않는다. 나는 소외된 운동권 출신들의 이야기 말고도 사회적으로 이슈 있는 사건들을 끝없이 소설화 해내는 지금의 공지영 작가가 훨씬 좋다. ^^


정의는 그 안에 분노를 지닌다.
정의에서 나오는 분노는 진보의 한 요소가 된다.

                                                      - 빅토르 위고, <레미제라블> 중에서

(공지영 첫 르포르타주 쌍용자동차이야기 <의자놀이> 에서 발췌)



첫번째 장 '7분간의 구조요청' 을 읽는 도중에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일단 책 읽기를 중단했다. 작가로 데뷔한지 20년도 넘은 노련한 공지영 작가의 생생한 필력에 질식할 것 같았다. 그저 "아.." 하는 탄식뿐... 나는 책을 읽으며 피해자가 오 모씨에게 당하는 그 순간으로 순간이동을 하고 말았다. 그리곤 늑장 대처를 한 경찰에게 새삼스레 화가 났다. 다시 책 읽기를 시작했다.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또 책 읽기를 중단했다. 어쩌다 보니 故 조영래 변호사의 생전 글 모음집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 둘 수는 없습니다> 를 읽게 됐고, 자연스레 그가 쓴 <전태일 평전> 도 읽게 되었다. 난 다시 70년대 숨 쉬기조차 힘든 먼지 속에서 제대로 숨 쉬기는 커녕 밥 먹을 시간조차 아껴가며 밤새 일했던 노동 현장으로 순간이동을 했다. 답답했다. 그 때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겠지만 여전히 일터에서의 삶은 고단 그 자체니까. 이런식으로 1시간 남짓한 출근길에 겨우 첫번째 장 하나를 읽었다.

퇴근길에 다시 책을 펼쳐들었다. '13번째 죽음' 부터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까지 읽어 내려가는 동안 두어번 책 읽기를 중단했다. 솔직히 쌍용차 해고 사태로 이렇게나 많은 이들이 자살을 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이렇게 심각한 문제라고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내 자신이 창피했다. '이 사회가 정상일까?' 대목에 이르러서는 분노가 치밀었다. 정말 왜 모두들 조용히 있는 것일까? 쌍용차가 더 이상 우리나라 사람 소유의 회사가 아니고, 인도 회사여서 그런 것일까? 그래도 자국민이 이토록 고통을 겪는데... 내가 노동법을 모르는 건지... 아니면 우리 사회가 암묵적인 침묵을 강요하고 있는 것인지... 것도 아니라면 하필 현재 우리나라 경기가 너무 안 좋아서 남의 불행 따위엔 신경 쓸 여력이 없는지도...


일터는 단지 먹이를 구하기 위해 가는 장소가 아니다. 돈만 벌면 어디든지 다 좋다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터, 우리에게 생활을 보장해주고, 우리에게 밥과 의복을 주며, 사람들을 엮어내서 인간의 사회적 욕구를 펼치게 해주는, 우리의 품위와 자부심, 그리고 긍지를 주는 내 인생이 펼쳐지는 현장이다. 가정과 직장, 이 두 들판이 우리의 인생인 것이다. 그리고 가정이 무너지면 가끔 직장생활도 무너지지만, 일터가 무너지면 가정은 거의 대부분 무너진다. 아무런 사회안전망, 즉 재취업과 실업보험, 혹은 무상교육, 무상의료, 주거 등에 대한 약속 없는 정리해고는 삶에서 해고된다는 말과 같다.

(공지영 첫 르포르타주 쌍용자동차이야기 <의자놀이> 에서 발췌)



너무나 마음이 복잡하다. 답답하다. 속이 터진다. 영화 <26년> 을 보고 났을 때처럼 분노가 치밀어 죽겠다. 쌍용차 노조와 전혀 다르게, 회사에게 아무 말을 못하는 우리 회사 노조. 그런 노조에게 내 목소리조차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내가, 쌍용차 사태에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인지도 모른다. 이름은 똑같은 "노조" 인데 어쩜 이리 다를까?

1219일, 대통령 선거일까지 달랑 8일 남았다.
소위 진보 → 보수로 정권이 바뀐 후로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대통령이 바뀌면 당장이라도 경제가 살아나고 일자리가 마구 생길 줄 알았던 사람들... 그 당시에도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의 결과를 보면... 어이가 없다.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할 수 있을까? 그것도 젊은 사람들이... 쯧쯧... (한편으론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을까 싶기도 하다) 작금의 대한민국을 돌아보자. 어느 진영이 되더라도 쉽사리 경제가 살아날 여지는 없어 보인다. 모두 복지를 논하고, 하나같이 반값 등록금을 말하지만 대체 뭔 돈으로 하겠다는 건지 납득이 안 된다, 납득이. (대학 등록금 자체를 낮출 생각은 아무도 안 한다) 배부른 소리한다고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적어도 지금보다는 좀 더 자유로운 세상이 좋다. 쇠고기 먹기 싫다고 촛불시위 했다고 잡혀가고, 부정적인 경제 견해를 밝혔다고 잡혀가고... 적어도 이런 사태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유권자들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니 부디 적극적인 현실 참여는 하지 않더라도 <의자놀이> 같은 책들 읽으시고, 지금 우리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도는 인식하는 현실 감각은 잃지 말자구요! .특하고 .련된 .주시민이 되어봅시다!

"함께 살자, 함께!"

의자놀이작가공지영의첫르포르타주쌍용자동차이야기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학
지은이 공지영 (휴머니스트,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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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유산 <현산어보> 가 새롭게 태어난다!
흑산의 박물학자 정약전의 과학정신을 찾아떠나는 여행.
현직 교사가 7년 동안 쏟은 땀과 열정으로 되살아난 <현산어보>.
살아숨쉬는 듯 생생한 400여 컷의 세밀화와 800여 컷의 자료사진.
(이태원 <현산어보를 찾아서 3> 에서 발췌)

책 껍질(?) 뒷 면 안 쪽에 씌여진 홍보글이다. 아마 1권, 2권에도 동일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을 텐데, 그걸 <현산어보를 찾아서 3 : 사리 밤하늘에 꽃핀 과학정신> 에서야 보게 됐다. 글에도 나와 있듯이 현직 교사가 7년 동안 쏟은 땀을 몇 자의 글로 옮기긴 매우 죄송하지만 혹시나 <현산어보를 찾아서> 시리즈가 궁금한 독자들에겐 참으로 적절한 설명 같아 옮겨 보았다. 흠... 그런데 지금 표지를 보다보니 책에 두른 노란 띠지에도 같은 내용이 씌여져 있다... OTL

<현산어보를 찾아서> 를 벌써 3권째 맞이하는 내 느낌은, 현산어보를 찾아서, 현산어보의 탄생지 흑산도를 비롯 우이도, 신지도로 떠나는 여행, 현재 → 200여 년 전 현산어보가 씌여질 당시의 과거를 유추하여, 현산어보를 풀어나가는 기행문이자, 추리글이라고나 할까? (3권은 무려 431페이지다. 한 손으로 들고 읽기에 버거운 무게다. 이런 책이 자그마치 5권이다. 수 년간 직접 발로 뛰며 고생한 지은이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짝짝짝 ^^)

                                               <이미지 출저 : Yes 24>
 
그렇다면 정약전(丁若銓)은 누구인가?
본관은 나주. 영조 34년(1758) 3월 1일 광주 마현(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진주목사 정재원과 해남윤씨(공재 윤두서의 손녀)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자는 천전天全. 호는 일성루一星樓 · 매심재每心齋 · 손암巽庵 · 연경재硏經齋 이며, 다산 정약용의 형이다.
정조 14년(1790)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부정자 · 초계문신을 거쳐 정조 21년(1797) 병조좌랑이 되었다. 순조 1년(1801) 신유박해 때 천주교와 관련되었다는 죄목으로 신지도, 우이도, 흑산도를 떠돌며 유배 생활을 하다가 1816년 우이도에서 생을 마쳤다. 저서로『현산어보玆山魚譜』와『논어난論語難』,『역간易柬』, 『송정사의松政私議』등이 있다.
(이태원 <현산어보를 찾아서 3> 에서 발췌)

3권에서는 다양한 게들, 청어(와 과메기), 전어, 갈치, 오징어, 성게, 조기(와 영광굴비) 등 다양한 어종의 소개와 함께 내가 이 책을 구입한 숨은 목적인 정약전의 이야기 몇 토막(이벽과의 만남, 정약전의 첫 유배지 신지도, 황사영 백서 사건, 정약용의 유배지 강진 등)을 고맙게도 다루고 있다. 헤벌쭉... ^^ (이런 큰 관심을 보이는 주제에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정약용의 생가조차 가보지 못했다. 가족여행이나 예전 회사에서 워크샵을 빙자해 가졌던 MT 때 수도 없이 지나쳤던 조안터널, 두물머리... "정약용 생가" 라는 이정표 역시 수도 없이 많이 마주쳤었는데...)

선비를 살찌웠다는 생선 - 청어.
값이 싸고 맛이 좋아 가난한 이들이 즐겨먹었다는 청어를 먹어 본 기억은 없다. 사실 "청어" 하면 서양이 떠오른다. 네덜란드였던 것 같다. 숙취 해소를 위해 절인 청어를 먹는단다. 그 외에도 여러 서양 고전소설에서 청어나 절인 청어를 만났던 것 같다. 럭셔리한 연어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나에게 청어는 서양에서 즐겨먹는 생선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요즘은 주로 꽁치로 만든다는 과메기의 원조가 실은 청어라는 걸 알게 된 건 몇 년 되지 않았다. 오래 전 서민들의 식탁을 풍성하게 해줬던, 흔한 생선이었던 청어가 지금은 국내 연안에서 거의 자취를 감췄다는 슬픈 이야기다. 녀석들은 대체 어느 바다를 헤매고 있는 걸까?

영남산 청어와 호남산 청어의 척추뼈 마디 수까지 세어가며 구분했던 현산어보의 숨은 조력자, 정창대의 정체가 몹시 궁금하다... 그는 누구일까? 그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4권과 5권을 구입해서 읽어야 할 텐데... 까마득하다...

현산어보를찾아서3:사리밤하늘에꽃핀과학정신
카테고리 과학 > 교양과학
지은이 이태원 (청어람미디어,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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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앞 부분이 도끼날처럼 튀어나와 매우 인상적인, 귀상어가 표지를 장식한 <현산어보를 찾아서 2 : 유배지에서 만난 생물들> 을 드디어 손에 넣었다.

원래는 25% 할인을 하고 있는 L 인터넷서점을 이용하려고 하였으나, 1권 구입 당시 가격 비교가 소홀하여 입은 금전적 손실(무려 3천원이나 차이가 났다!)이 떠올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평소 자주 이용하는 Y 인터넷서점도 기웃거려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때마침 할인행사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ㅋㅋㅋ 덕분에 30% 할인된 가격에 구입하게 되어 매우 흡족한 마음이다. ^^ 그 바람에 다소 무리를 하여 <현산어보를 찾아서 3 : 사리 밤하늘에 꽃핀 과학정신> 까지 덜컥 구입해버렸다. 그나저나 400 페이지에 달하는 이 녀석들을 언제쯤이나 해치울런지 심히 걱정스럽다.

                                              <이미지 출저 : Yes 24>
 
지난 <난설헌> 서평에서 나의 몹쓸 책 읽기 버릇을 공개했었다. 책을 순서대로 읽지 않고 내멋대로 읽어버리는... 처음엔 서문부터 차근히 읽기 시작하지만 금새 흥미를 잃고 책장을 휘리릭 넘겨 흥미있는 곳을 찾아 읽는데, 어느 순간 겹쳐 읽는 부분들이 생겨나고, 그 빈도가 자주 발생하면 책을 다 읽은 것이다. 이렇게 책을 읽다보니, 아주 먼훗날 읽었던 책을 다시 읽게 되는 날, 가끔씩은 매우 낯선 부분을 발견하고 뒤늦게 읽게 되는 경우가 있다. 책을 순서대로 읽지 않으므로 생기는 폐단인데, 십년 가까이 이렇게 버릇이 들어서 이젠 돌이킬 수가 없다. 간혹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고 쭉 읽어나가는 책들도 있긴 하지만 거의 없다. 하지만 뭐 어떤가? 책을 좋아하고 읽기만 하면 되는 것 아녀? ^^;;

이 책 역시 순서 무시하고 내멋대로 읽었다. 두께도 만만치 않으니 나로서는 매우 당연한 일. ㅋㅋㅋ 2권에서는 해조류, 갑각류, 패류, 까나리, 민어, 우럭류 그리고 바다의 폭군으로 일컬어지는 상어류에 대해 다뤘는데, 나의 관심을 끄는 건 역시 상어들이었다. (사실 나의 관심은 정약전이라는 인물 자체에 있지만...) 머리에 톱을 단 녀석부터 표지를 장식한 도끼 단 녀석까지 뭐 이렇게 생긴 녀석들이 다 있나 싶게 참으로 다양한 상어들이 등장했다. 정약전이 작은 흑산도에 갇혀 그 많은 종류의 상어들을 만났다는 것 자체가 그저 놀라울 뿐... 그 밖에 12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탔던 거북손(흑산에서는 '보찰寶刹' 이라 부른단다)이 등장해서 반가웠다. 독이 없어 몸에 좋고 맛도 좋다는 거북손을 꼭 맛보고 싶은데 이 녀석을 맛보려면 흑산에 가야하나? ^^ 또 흑산을 찾았던 나비학자 석주명의 이야기도 잠시 등장했다. 곤충을 극도로 무서워하는 나에겐 예쁜 나비도, 그저 나방이 친구로 여겨질 뿐이다. 내가 아는 곤충학자라곤 저 유명한 파브르님 밖에 없다. 어쨌거나 이 책의 저자 이태원 선생은, 젊은 나이에 요절한 석주명이 후일 많은 재조명을 받은 것에 비해 아직도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하는 정약전의 처지를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다. 나 역시 하루빨리 필사본으로만 전해졌다는 <자산어보> 를 완역본으로 만나고 싶다. 허긴 정약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큰 조명을 받고 있는 그의 아우 정약용조차 그가 남긴 수 많은 저서들이 제대로 전해지지도 못했을 뿐더러 그나마 전해지는 저서들도 제대로 된 연구가 이뤄지지 않는 형편이라 들었다. 오히려 북에서의 연구가 더 활발하다는...

석주명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에 마흔두 살이라는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도 그랬지만 사후에도 세상 사람들은 석주명을 기억하고 인정했다. 석주명은 1964년 정부로부터 건국공로훈장을 추서받았으며 1970년 동아일보사가 각계 인사들에게 의뢰하여 선정한 한국 근대 인물 100인 중 과학 분야의 공로자로 뽑히는 영광을 얻었다. 그리고 1998년에는 4월의 문화인물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같은 자리에 있어야 할 정약전은 여전히 대중적인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늘 안타깝게 느껴진다.
(이태원 <현산어보를 찾아서 2> 에서 발췌)

소설 <흑산> 이 준 충격으로 인하여 오랫동안 조선시대를 헤매고 다니다 나꼼수 4인방 중 하나인 정봉주 전 의원의 전격 수감으로 말미암아 잠시 현실 세계로 돌아와 그가 쓴 책을 읽었다. 그것도 잠시... 얼마 전 12에 다시금 등장하신 유홍준 교수님 덕분에 다시금 조선시대로 넘어갈 전망이다. 어린시절 뭣 모르고 다녔던 경복궁하며, 서울에 살며 한 번도 가 보지 못했던 종묘까지 가 볼 작정이다. (십년 넘게 태릉 언저리에 살았으면서 아직도 태릉에 가 보지 못한 나이다) 뜬금없이 MB 인수위 시절 "오륀지" 파문을 일으켰던 한 여자 분이 생각난다. 정작 그분들은 "왜" 와 "외" 의 발음을 구분할 수 있을까? 우리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의 문화유산 중에도 위대한 것들은 어마어마하게 많다.

혹시 까나리액젓의 까나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우리나라 근해의 다양한 상어들이 뜬금없이 궁금하다면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현산어보를찾아서2:유배지에서만난생물들
카테고리 과학 > 교양과학
지은이 이태원 (청어람미디어,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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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

2011. 12. 31. 00:35 | Posted by 너부리7

<홍길동전> 으로 유명한 허균(許筠)의 누이, 허난설헌(許蘭雪軒) = 허초희(許楚姬)의 스물일곱 일생 중 결혼 이후의 삶에 중점을 맞춘 소설 <난설헌> 을 읽었다.

나는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허난설헌의 본명이 허난설헌인줄 알았다. 그미(소설에 나오는 표현의 빌었다, "그미" 주로 소설에서, '그녀' 를 멋스럽게 이르는 말 - 표준국어대사전)의 본명은 허초희이고, 난설헌은 그미 스스로가 지은 자신의 호였다. 덧붙여 신사임당의 본명이 사임당이 아님을 알게 된 지는 좀 됐으나, 그녀의 본명이 신인선이었음을 알게 된 것은 지난 화요일 1100 에 출제된 문제를 보고나서였다.

난독증까지는 아니지만 언제부터인가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지 못하게 됐다. 물론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진득하니 첫 장부터 차례대로 읽기 시작하지만, 이내 싫증을 느끼고는 책의 중간부분을 펼쳐 읽은 후 곧장 결말부분으로 직행하여 읽어버린다. 그 다음 중간중간 읽지 않았던 부분을 찾아서 읽는 이상한 습관이 생겨버렸다. 그런데 아주 오랜만에 <난설헌> 은 처음 → 끝까지 순서대로 읽었고, 보통은 며칠씩 걸려 책 한 권을 읽는데 비해 이번에는 퇴근 후 이틀간 저녁시간을 이용해 금새 읽어버렸다. 그 만큼 최문희 작가의 글이 술술 잘 읽혔던 것 같다.

                                                <이미지 출저 : Yes 24>


세 가지 한(恨)이 있다는 허난설헌. 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 태어난 것, 남편의 아내가 된 것이 바로 그것이란다. 그미의 한스러움이 참으로 절절하게 다가온다. 현재의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대부분이 그미가 살던 시대에는 꿈조차 꿀 수 없는 것들이었으므로, 현재를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나는 축복받는 것일까? 예전에 아프리카 소말리아 출신의 슈퍼모델, 와리스 디리가 쓴 <사막의 꽃> 을 읽으며, 내가 아프리카에서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에 안도한 적이 있다. 뜬금없이 그 때의 일이 떠오른다.


哭子 (곡자, 아들딸 여의고서)

                                                                         - 허난설헌(許蘭雪軒)

去年喪愛女 (거년상애녀, 지난해에는 사랑스러운 딸을 잃었고)
今年喪愛子 (금년상애자, 올해는 하나 남은 아들까지 잃다니)
哀哀廣陵土 (애애광릉토, 서럽고 서러워라 광릉고장에)
雙墳相對起 (쌍분상대기, 두 무덤 나란히 마주보고 만들어졌네)
蕭蕭白楊風 (소소백양풍, 백양나무 쓸쓸타 바람이 일고)
鬼火明松楸 (귀화명송추, 도깨비불 소나무에 비추이누나)
紙錢招汝魂 (지전초여혼, 지전으로 너희들 혼을 부르고)
玄酒尊汝丘 (현주존여구, 무덤에 맹물 한잔 부어놓는다)
應知弟兄魂 (응지제형혼, 너희들 남매의 가여운 혼이야)
夜夜相追遊 (야야상추유, 생전처럼 밤마다 정답게 노닐고 있으리)
縱有腹中孩 (종유복중해, 비록 뱃속에 아이가 있다 하지만)
安可糞長成 (안가분장성, 어찌 제대로 자라날 수 있으랴)
浪吟黃坮訶 (낭음황대사, 하염없이 슬픈 노래를 부르면서)
血泣悲呑聲 (혈읍비탄성, 비통한 피눈물에 목이 맨다)

(최문희 장편소설 <난설헌> 에서 발췌)

정규 교육과정에 한문(漢文) 수업을 들었던 나이지만 다 까먹은지 한참인지라, 책에 한글 표기없이 달랑 한자와 해석한 문장만 나와서 한자 찾느라 고생 좀 했다. ^^;;


소헌과 제헌 남매를 연달아 잃고 난 후 허난설헌이 썼다는 시다. 꼬박 열달을 고이고이 제 몸에 품었다가 죽을 것 같은 산고를 거쳐 낳은 사랑하는 자식을 연달아 둘이나 앞세운 어미의 피눈물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것도 소설의 내용으로 보자면 낳기만 하고 제대로 보듬어 보지도 못한 채 아이들을 잃었으니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책을 읽으며 새삼 유교가 통치 이념이었던 폐쇄적인 조선시대 속에서, 칠거지악(七去之惡, 조선시대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이유가 되는 일곱가지의 허물,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것-不順舅姑,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無子, 행실이 음탕한 것-淫, 질투하는 것-妬, 나쁜 병이 있는 것-惡病, 말이 많은 것-多言, 도둑질을 하는 것-盜)삼종지도(三從之道, 여자가 따라야 할 세가지 도리를 이르던 말, 시집가기 전에는 아버지를, 시집가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은 뒤에는 아들을 좇는 것을 이른다) 라는 지엄한 법도 아래 숨 죽이며 살았을 조선시대 아녀자들의 고된 삶이 느껴졌다. 누가 만든 말인지, 흔히 '여자의 적은 여자' 라고들 하는데, 가장 좋은 예가 바로 고부관계가 아닐까? 재력이 충분히 뒷받침 되어 먹고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당당한 양반가의 맏며느리인 허난설헌이 음식하고 바느질 하는 따위의 집안일을 할 것도 아닌데, 남아도는 시간에 좋아하는 서책을 읽고, 시를 썼다한들 그게 무슨 대수라고... -_-; 시어머니 송씨가 밉다.

소설 <난설헌> 속에서 허초희의 남편 '김성립' 은 좀 못난 사내로 그려지고 있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김성립' 이 어떤 인물인지 검색해봤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가 전사했고, 시신을 찾지 못해 의복만으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부인 허초희와는 사이가 원만하지 못했으며, 슬하에 자녀가 없어 양자를 들였다고 되어 있다. 이 정도가 전부다. 황사영 검색할 때처럼 집요하게 뒤지지 않아서 자료를 못 찾았을 수도 있겠지만... 의병을 일으켰다는 내용만으로 보자면 그리 못난 사내로 보여지진 않는데... 조선의 천재 시인이라 일컬어지는 "허난설헌" 의 불운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작가적 상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의 기록이란 것이 어차피 승자의 기록이고, 극히 일부분만이 현재까지 전해져 오는 것이니까, 대부분의 역사소설이 기록에 의한 사실에 기초한다 하더라도 작가적인 상상력이 많이 가미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허난설헌, 허초희의 "시" 뿐만 아니라, 그미의 인간적인 면도 궁금하다면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난설헌최문희장편소설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최문희 (다산책방,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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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玆山魚譜)> 는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허영만 화백의 <식객> 시리즈 덕분에 관심을 갖게 된 책이다. 생선이나 해산물에 관련된 에피소드가 나올 때면 영락없이 참고 문헌으로 등장했던 <현산어보를 찾아서> 가 너무나 궁금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책 역시 실제로 구입을 해야겠다 결심을 하게 된 것은... 그.렇.다. 이 역시 김 훈의 <흑산> 때문에 구입한 것이다. OTL

그.런.데. 자산어보? 현산어보? 무엇이 맞는 것일까? '한자' 로는 모두 玆山魚譜 라고 쓴다. 문제는 '玆 (검을 자)' 자에 대한 해석인데, <현산어보를 찾아서> 의 저자인 이태원 님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정약전은 책의 서문에서 "흑산이라는 이름은 어둡고 처량하여 매우 두려운 느낌을 주었으므로 집안 사람들은 편지를 쓸 때 항상 黑山을 玆山이라 쓰곤 했다. 玆은 黑과 같은 뜻이다" 라고 하며 玆山이란 이름의 유래를 밝힌 바 있다. 비록 '玆' 을 '자' 로 읽는 것이 일반적이긴 하지만, '玆' 이 '黑' 을 대신한 글자라면『설문해자說文解字』나『사원辭源』등의 자전에 나와 있듯이 '검을 현 玄'  두 개를 포개어 쓴 글자의 경우, 검다는 뜻으로 쓸 때는 '현' 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 현산어보설을 주장하는 이들의 논리였다
(이태원 <현산어보를 찾아서 1> 에서 발췌)
 

물론 <자산어보> 로 읽을지, <현산어보> 라고 읽을지는 독자들의 몫일 것이다. ㅋㅋㅋ

                                               <이미지 출저 : Yes 24>

어떻든 중요한 것은 이 책의 제목이 <자산어보> 나 <현산어보> 아닌 <현산어보를 찾아서> 란 것이다.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오기 전까지 나는 단순히, 정약전이 쓴 원작을 고스란히 번역하고, 원작에는 없는 그림들이 추가된 정도라고 생각을 했으나... 그것은 그야말로 커다란 오산이었다. 만일 그 정도였다면 굳이 저자가 책의 제목을 <현산어보를 찾아서> 라고 붙이지 않았으리오...  T^T  때문에 처음엔 적잖게 실망을 하기도 했지만, 원본은 전혀 전해지지 않고, 필사본만 전해진 상태의 책을, 이전에 나왔던 번역본 몇 가지를 참고로 하여, 오로지 발품을 팔아, 이렇게 풍요로운 책으로 탈바꿈 시킨 저자의 오랜 노력에 경의를 표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원작이 궁금하다...)

<현산어보를 찾아서> 는 처음엔 조금 지루한 듯도 하지만 계속 읽다보면 언제 그랬냐 싶게 금새 흥미를 느껴 푹 빠져들게 된다. 몇 백 년 전, 한자로 씌여진 책을 옮긴 것이다 보니, 과거 정약전이 한자로 써 놓은 물고기의 이름을, 필자가 그간 출간된 <자산어보>들을 참고하기도 하고, 직접 흑산도를 찾아 현지 주민들에게 물어보는 등 나름의 연구 과정을 거쳐, 과거 玆山魚譜 속의 이것이 오늘날의 이것이 아닐까 하는 해석을 해놓은 부분들이 흥미롭다. 1에선 구렁이를 닮은 물고기(무엇일까요? ㅋㅋ)의 해석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평소에 자연과학에 관심이 많거나 또는 나처럼 온갖 잡지식에 무한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 특히 평소 정약전의 <자산어보> 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아! 허영만의 <식객> 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 포함하여...

현산어보를찾아서1:200년전의박물학자정약전
카테고리 과학 > 교양과학
지은이 이태원 (청어람미디어,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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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목민심서

2011. 12. 12. 01:17 | Posted by 너부리7
소설 <목민심서> 역시 김 훈의 <흑산> 때문에 구입하게 됐다.
도대체 <흑산> 때문에 구입하게 된, 앞으로 구입하게 될 책이 얼마나 될런지 모르겠다. 워낙 책 읽기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책을 구입하여 모으는 것 역시 즐기는 나이기에 실로 두렵기만 하다. ㅠ_ㅠ 긴축재정 하겠다며, 책 구입은 매달 구입하는 요리잡지 <수퍼레시피> 와 추가 1권으로 정해두었건만 지난 11월과, 이 달 12월은 한참을 초과하고 말았다.

책을 구입하기에 앞서 또 인터넷을 뒤져보니, 내 기억에도 남아있는 소설 <동의보감>, 나도 읽었던 소설 <토정비결> 과 더불어 이 책 소설 <목민심서> 가  90년대 큰 인기를 모았던 3대 역사소설이래나 어쨌대나... <흑산> 덕에 나만 몰랐던 '황사영' 을 알게 됐고, 분명 90년대를 통과하여 오늘에 이르렀을 내 기억 속에는 여전히 없는 (이상하다, TV드라마까지 나왔었다는데 왜 기억에 없을까?) '소설 <목민심서>' 까지 알게 됐으니 이것이 좋은 현상인지, 안 좋은 현상인지... 요즘 나는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장흥 유원지 깨에 있다는 '황사영' 의 묘지를 방문할 궁리를 하고 있다. -0- 이러다 종국엔 <황사영의 백서 연구> 라는 책까지 구입하게 될 것 같다... 나 어떡해...

마지막 개정판이 나온지도 몇 년이 된 책이어서 가격 비교에 들어갔다. 내가 주로 이용하는 Y 가 제일 비쌌다. Y문고 인터넷서점이 가장 저렴했지만 회원가입의 압박이라니... OTL (내가 가입하지 않은 인터넷쇼핑몰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사실에 나도 놀랐다) 종종 이용하는 L 에 갔더니, 가장 싼 Y문고 보다 100원 비쌌다. 구간(舊刊)은 특정카드 사용 시 5% 카드할인까지 되어 저렴하게 구입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문제는 배송이었다. 1129일에 주문을 했는데 책은 12월 2일에 도착했다. 주문할 때부터 예상출고일이 121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총알배송으로 121일에 도착되는 게 맞는 거 아닐까... 어쨌거나 경비아저씨의 큰 도움으로 책은 123일에야 내 손에 들어왔다. ㅋㅋㅋ

이전에 올렸던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2 : 어둠의 시대> 에서도 언급했듯이 사실 나의 관심은 정약용과 약전 형제가 아니라, 약용의 맏형 약현의 큰 사위 황사영과 약용의 막내 형 약종이었다. 그리하여 소설 <목민심서> 상, 중, 하 가 도착하자 마자, 책을 뒤져 이들이 등장한 내용을 급히 찾아 읽었다. 애석하게도 주인공이 '정약용' 인 소설이므로 두 사람을 언급한 내용은 거의 없었다. 출사에 뜻이 없고, 고집불통으로 그려졌던 약종에 대해 가장 많이 할애가 되었던 것은, 그의 부인 유씨와 정씨 집안의 궂은 일을 도맡아 도와주던 천 서방이 참수된 약종의 시신을 찾아 헤매다니던 이야기였다. ㅠ_ㅠ 그래도 하나의 소득이라면 우리나라 천주교 여명기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이승훈, 이벽에 대한 내용이 등장해서 반가웠다.

소설 <목민심서> 는 주인공 '정약용' 의 어린시절부터 마지막에 이르는 일대기(일반적으로 정약용은 천주교를 배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름 손품(?)을 팔아 인터넷도 뒤져보고, 책도 몇 권 읽어본 후 내린 나의 결론은, 그가 처음부터 천주교를 새로운 학문에 대한 호기심으로 접근하지 않았나 싶다. 실학의 대표 격인 약용 역시 당시의 선비들처럼 유교를 숭상하였으므로, 천주교 교리에 접근하면 접근할수록, 특히 제사를 금한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지 않았나 싶다. 물론 신유박해는 노론 벽파의 무자비한 정치공세에 따른 비인간적 처사였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군무부(無君無父) 즉, 제사를 금하는 천주교 교리에 기인된 바가 크다고 보는데, 우연히 교황청이 일본의 "신사참배" 는 종교 행위가 아니므로 인정했다는 걸 알게 됐다... 기가 막히다, 정말! 나는 이래서 천주교에 관심을 가질 수는 있어도, 천주교인이 될 수는 없다)와 함께 그의 주변 인물들까지 자세히 다루고 있어서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은 나에겐 안성맞춤이었다. ^^ 덤으로 조선후기의 시대상까지 잘 그리고 있어 끝까지 흥미를 잃지않고 잘 읽었다.

조선시대나 민족의 스승이라 불리는 '정약용' 에 관심이 많다면 한 번쯤 읽어보기를 권한다.

소설목민심서세트(전3권)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황인경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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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은 김 훈의 <흑산(黑山)> 때문이다...

김 훈의 신작 <흑산> 을 읽고, 정약용(丁若鏞) 일가와 백서의 주인공 황사영(黃嗣永)을 비롯한 초기 천주교 순교자들에게 급격한 관심이 가고 있는 요즘이다.

이 관심은 다소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 황사영이 당한 능지처참형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찾아보는 지경에 이르러, 우리가 익히 '능지처참' 으로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은 "거열형" 이며, 실제 능지처참은 이런 것이다 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 형이 집행되는 사진까지 찾아 보고는, 무서운 마음에 밤 잠을 설치기도... (난 뭐 하나에 빠지면 매우 집요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 때 오래 전 옛날 서양에서는 쇠로 된 소 모형에 사람을 집어넣고 그 아래에 불을 떼 서서히 죽이는 극형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는데... 세상에 이런 일이! 글쎄, 그 이후 보게 된 영화 <신들의 전쟁> 에서 그 끔찍한 극형이 여사제들에게 시행되고야 말았다... 아, 정말... 무섭다, 무서워... 이 세상에서 제일 잔악하고 무서운 건 바로 인간들이 아닌가 싶다... ㅠ_ㅠ

각설하고. 어디 그 뿐이랴... 황사영의 묘가 우리 집에서 과히 멀지 않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며, 우리나라 천주교 성인 103위, 시복시성 125위까지 발견(모르던 것을 알게 됐으니 나에겐 '발견' 이다)하는 개가를 올렸다. 그런데 이들 명단을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황사영이 보이지 않는 거다. 또 초기 천주교 순교자들이 성인 103위에 빠져 있다는 것도 참 씁쓸하게 느껴졌다. 뭐, 그 분들이 성인이 되고자 순교를 하신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학창시절 국사 성적이 상위권이었음에도 어찌 된 영문인지 내 기억 속엔 황사영의 백서가 없다. 그러다 이번 기회에 번역본 전문을 읽어보았다. 일부에서는 청나라의 힘을 빌어 신앙의 자유를 구하려던 황사영에게 이완용 못지 않은 매국노 라는 평가를 하기도 하고, 당시 청나라도 천주교를 환영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으므로 백서가 제대로 전달이 되었다고 해도 큰 도움은 없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어쨌거나 백서를 접한 나의 심경은 지금까지도 복잡하기만 하다.

                                                <이미지 출저 : Yes 24>

그.리.고. 결국은 이 책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까지 섭렵하고 말았다... OTL
책을 구입하기 전 서평을 훑어보니, 1권은 주로 정조에 관한 얘기들이라고 하여, 형제들의 이야기가 주로 등장하는 2권만 구입해서 읽었다.

즉, 이 책을 구입해서 읽은 목적은, 정약용이 아니라, 그의 형제들 중 끝까지 천주교를 배교하지 않고 결국 순교의 길을 갔던 "정약종" 과 정약용의 조카사위이자, 백서의 주인공 "황사영" 에 대한 관심이었다. 다행히 두 사람의 이야기는 제7장 하늘에 속한 사람 정약종, 제8장 어둠의 시대에 등장하는데, 황사영의 백서를 인용한 부분이 많아, 새삼 백서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가치에 대한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아집에 갇혀 변화를 거부했던 경직된 시대, 소아에 갇혀 개방을 거부했던 폐쇄의 시대, 반대 당파를 공격하기 위해 무고한 사람의 목숨을 서슴없이 죽이던 증오의 시대, 자신과 다른 모른 것을 증오했던 불행한 시대의 유산을 한 몸에 안고 그들은 죽음을 맞이했다. 그들의 죽음은 단지 그들만의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지향했던 정조시대 조선의 죽음이기도 했다"
(이덕일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2 : 어둠의 시대> 에서 발췌)

이 책에도 자세히 등장하고, 지난 몇 주간 인터넷 품을 팔아 조사한 끝에 내린 결론은, 결국 천주교에 대한 박해도 그 시작은 지긋지긋한 당파싸움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러나 정순왕후와 노론 벽파들이 그토록 제거하길 원했던 남인 시파의 차세대 주자 정약용은 제사를 모시지 않는 천주교 교리에 반발, 이미 배교한 후였으니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 편으론
유교를 바탕으로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던 사대부 양반가들들의 두려움이 불러일으킨 참사이기도 했다. "신주단지 모시듯 한다" 는 말이 기인되었을, 조상의 제사를 모시지 않는 천주교도들의 행태가 그들의 입장에서는 천인공노할 짓거리로 여겨졌을 것이므로, 어찌 보면 당연한 듯 싶기도 하고...)


사실... 오늘은 마포 합정동에 위치한 <절두산 순교 성지> 에 가 보려고 했었다. 친한 언니와 약속이 있었는데, 그 언니가 오늘 낮에 홍대에서 결혼식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겸사겸사 들려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 <절두산 순교 성지> 홈페이지를 검색하여 들어가보니...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을 아래의 일정으로 인하여
휴관하오니 순례일정에 착오없으시기를 바랍니다.

- 아 래 -
○ 11월 10일(목) : 수험생 학부모 피정
○ 11월 15일(화) ~ 12월 8일(목) : 제2회 가톨릭미술공모전 수상작 전시준비

* 노기남대주교기념관 및 형구형틀체험관은 개방합니다.

게시판에 이러한 게시글이 떡~ 하니 올려져 있는 게 아닌가... ㅠ_ㅠ
아... 이건 아니잖아...


어쨌거나 난 과유불급(過猶不及) 이라는 말에 대.찬.성. 이다.
뭐든 과하면 탈이 나는 법.
종교 역시도 내 마음의 평화를 얻는 선에서 그치는 게 좋다 싶지만...

조선 천주교 초기에 순교를 하셨고, 박해를 받으셨던 많은 분들의 명복을 빈다.
(인간이기에 무서움에 배교를 하셨더라도
 실제로는 그 마음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셨을 많은 분들을 포함하여)
아마 그들이 현재 우리나라의 종교 세태를 본다면 과연 뭐라고 하실까?


☆생각보다 꼭지가 매우 길어졌다.
   마지막으로 책 뒷 표지에 등장하는 글로 마무리 한다.

...이승훈은 물었다.
"너희들의 시대는 주류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죽이고,
 열린 사회의 지향을 국가에 대한 반역으로 몰지는 않는가?"

...정조는 이렇게 물었다.
"너희들의 시대에도 나처럼 부친을 죽인 적당(賊黨)과 타협하며
 미래를 지향했던 정치가가 있는가?"

...정약전은 물었다.
"너희들의 시대에도 불의한 세상에 대한 절망을
 민중과 자연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시킨 사람이 있는가?"

...그리고 정약용은 물었다.
"너희들의 시대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를 죽이지 않는가?"

정약용과그의형제들2
카테고리 역사/문화 > 한국사
지은이 이덕일 (김영사,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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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 (黑山)

2011. 11. 6. 00:26 | Posted by 너부리7

새.남.터.

                                     <이미지 출저 : 새남터 성당 홈페이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천주교 순교 성지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신부라는 "김대건 신부" 가 순교한 곳이기도 하다.
현재 서울 용산구 이촌2동이 바로 그곳이다.
내가 유년시절을 보낸 곳이자, 유치원 과정을 마친 새남터 성당이 있는 곳이다.
내가 태어날 무렵 돌아가셨다는 할머니께서 천주교 신자셨고,
천주교인들의 묘지에 묻히기도 하셨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종교적 연고가 없었기에
1년 동안이나 수녀님과 신부님 슬하에서 교육을 받았음에도
천주교 신자가 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유치원을 떠난 이후에도 몇 차례나 미사에 참여했었고
크리스마스엔 친구와 함께 명동성동에서 미사를 본 적도 있었으니
나에게 천주교는 유년시절의 푸근한 고향이랄까?
(성당에 다녀 볼 마음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솔직히... 교리공부의 압박이 너무 심했다... OTL)


한 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고향, 새.남.터.

오늘까지 지난 며칠 간 김 훈의 신작 <흑산(黑山)> 을 읽었다.
작가 김 훈은 저 유명한 <칼의 노래> 덕분에 알게 되었고,
나 역시 <칼의 노래>, 그 이후 <남한산성> 까지 여러 차례 읽어가며,
그닥 문학적이지 않은 김 훈 특유의 딱딱하고 건조한 글이 가감없이 전하는
전쟁의 참상을 고스란히 느끼며 한 동안 절절한 마음에 불편했었다.

신작 <흑산> 역시 김 훈 특유의 문체가 빛을 발하는 작품이었다.
(사실 난 <흑산> 이 <자산어보> 를 쓴 정약전의 이야기인줄 알았으나
 뚜껑을 열어보니 천.주.교.에 관한 이야기였다...
 <자산어보> 는 엉뚱하게도 <식객> 시리즈 때문에 관심을 갖게 됐으니...)


몇 년 전, 아주 우연히 홍성 근처의 천주교 순교 성지 "해미" 를 알게 되었다.
천주교 박해가 매우 심했던 곳이었다.
특히 천주교인들을 처형하는 잔인한 수법에 놀라 한 동안 먹먹했었다...
그 때 느꼈던 참담한 심정이 <흑산> 속에 등장하는 참상과 오버랩 되어
마음이 매우 안 좋다. ㅠ_ㅠ

대관절 종교가 무엇일까?
대체 무엇이기에 죽어가는 그 과정 동안의 극한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것일까?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해 결국 배교를 선택하고, 밀고를 하는 이들도 많았다지만
과연 그들에게 함부로 돌을 던질 수 있는 것일까?
종교에 귀의하지 않은 채 무교, 무신론을 고수하는 나에겐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배교하거나 순교하거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박한녀가 살아 있는 목숨으로 감당해야 할 매의 양과 고통의 크기는 같은 것이었다"
(김 훈 장편소설 <흑산> 에서 발췌)

                                              <이미지 출저 : Yes 24>

최초의 교육을 천주교 성당에서 받고,
고등학교 3년 내내 등·하교길에 2호선을 타며 순교성지 절두산을 지나다니고,
현재 회사가 명동성당이 있는 명동에 있는 걸 보니
나는 항상 천주교에 둘러싸여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느 한적한 평일에 하루 휴가를 내어 유년의 추억이 깃든 새남터 성당과
지나쳤을 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절두산 성지에 한 번 가봐야 겠다.

이 밤... <흑산> 덕분에 생각이 깊어진다...

흑산김훈장편소설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김훈 (학고재,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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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食客)

2010. 6. 9. 20:51 | Posted by 너부리7

식객(食客) is Over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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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Yes24>

내가 가장 좋아했던 만화 시리즈이자, 훌륭한 음식 선생님 역할을 톡톡히 해줬던 <식객>이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마지막 단행본이 출시된 지도 몇 주가 흘렀으니 이 만큼 확실한 뒷북도 없을 듯 한데, 그간 일간지에 연재되었던 <식객>을 매일 만나지는 못했어도, 단행본이 출시될 때마다 출근 도장 찍듯이 항상 사 보곤 했었는데, 더 이상 새로운 음식과 이야기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이 매우 애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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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 화백님, 2002~ 2010년까지 <식객> 연재하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앞으로도 더 멋있는 작품 기대하겠습니다.  ^-^


코스모스 (Cosmos)

2010. 6. 5. 17:46 | Posted by 너부리7

팍팍한 현실을 도피하기 위함일까?
뜬금없이 우주 공간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특별한 계기? <코스모스(Cosmos)> 라는 책을 읽게 된 얼마 전 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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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Yes 24>

어렸을 때 아빠가 가지고 계셨던 책 중에서, 우주 공간을 담은 표지가 인상적이었던 이 책을, 어느 날 지시장에서 특가로 팔길래 큰 고민 없이 냅다 주문했고, 하루만에 도착한 것이 몇 주 전의 일이었다.

워낙 두툼한 책이고, 100% 교양서적으로 보기엔 전문적인 지식도 심심찮게 등장하기 때문에, 꾸준히 몇 장씩 읽고는 있지만 언제쯤 읽기가 끝날 지는? 글쎄...  

지난 주 읽었던 부분엔 저 유명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이 등장했는데 솔직히 어렵다. 어느 친절한 누군가가 빛의 속도가 어쩌구 저쩌구 하는 원론적인 얘기 말고, 정말 쉽고 귀에 속속 들어오게 알려줬으면 좋겠다. ^-^;; 

과거의 나는 책 읽기를 매우 즐겼던 1人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지난 몇 년 간 실용서 위주로 구입을 하게 됐고, 실용서 라는 게 대개 그렇듯이 몇 장 넘기다 보면 내가 이걸 왜 샀을까 하는 후회와 함께 흥미 있는 내용 몇 가지만 뽑아보곤 단 한 번도 찾지 않는 수순을 거치게 된다. 반면 소설이나 교양서적은 다 읽은 후에도 틈틈히 꺼내 보게 된다. (나만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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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푸른 별, 지구>

딱히 UFO 같은 것엔 관심이 없더라도 지구 별 외에 다른 별에도 관심이 간다면(있다면이 아니다, 간다면 이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칼 세이건 이라는 과학자가 쓴, 엄청난 베스트셀러인 <코스모스(Cosmos)>와 함께 좁다란 대한민국, 지구를 벗어나 광활한 우주 공간으로 관심을 돌려보자! ^^

사용자 삽입 이미지

<거대한 가스 행성, 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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