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의 박물학자 정약전의 과학정신을 찾아떠나는 여행.
현직 교사가 7년 동안 쏟은 땀과 열정으로 되살아난 <현산어보>.
살아숨쉬는 듯 생생한 400여 컷의 세밀화와 800여 컷의 자료사진.
(이태원 <현산어보를 찾아서 3> 에서 발췌)
책 껍질(?) 뒷 면 안 쪽에 씌여진 홍보글이다. 아마 1권, 2권에도 동일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을 텐데, 그걸 <현산어보를 찾아서 3 : 사리 밤하늘에 꽃핀 과학정신> 에서야 보게 됐다. 글에도 나와 있듯이 현직 교사가 7년 동안 쏟은 땀을 몇 자의 글로 옮기긴 매우 죄송하지만 혹시나 <현산어보를 찾아서> 시리즈가 궁금한 독자들에겐 참으로 적절한 설명 같아 옮겨 보았다. 흠... 그런데 지금 표지를 보다보니 책에 두른 노란 띠지에도 같은 내용이 씌여져 있다... OTL
<현산어보를 찾아서> 를 벌써 3권째 맞이하는 내 느낌은, 현산어보를 찾아서, 현산어보의 탄생지 흑산도를 비롯 우이도, 신지도로 떠나는 여행, 현재 → 200여 년 전 현산어보가 씌여질 당시의 과거를 유추하여, 현산어보를 풀어나가는 기행문이자, 추리글이라고나 할까? (3권은 무려 431페이지다. 한 손으로 들고 읽기에 버거운 무게다. 이런 책이 자그마치 5권이다. 수 년간 직접 발로 뛰며 고생한 지은이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짝짝짝 ^^)
<이미지 출저 : Yes 24>
그렇다면 정약전(丁若銓)은 누구인가?
본관은 나주. 영조 34년(1758) 3월 1일 광주 마현(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진주목사 정재원과 해남윤씨(공재 윤두서의 손녀)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자는 천전天全. 호는 일성루一星樓 · 매심재每心齋 · 손암巽庵 · 연경재硏經齋 이며, 다산 정약용의 형이다.
정조 14년(1790)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부정자 · 초계문신을 거쳐 정조 21년(1797) 병조좌랑이 되었다. 순조 1년(1801) 신유박해 때 천주교와 관련되었다는 죄목으로 신지도, 우이도, 흑산도를 떠돌며 유배 생활을 하다가 1816년 우이도에서 생을 마쳤다. 저서로『현산어보玆山魚譜』와『논어난論語難』,『역간易柬』, 『송정사의松政私議』등이 있다.
(이태원 <현산어보를 찾아서 3> 에서 발췌)
3권에서는 다양한 게들, 청어(와 과메기), 전어, 갈치, 오징어, 성게, 조기(와 영광굴비) 등 다양한 어종의 소개와 함께 내가 이 책을 구입한 숨은 목적인 정약전의 이야기 몇 토막(이벽과의 만남, 정약전의 첫 유배지 신지도, 황사영 백서 사건, 정약용의 유배지 강진 등)을 고맙게도 다루고 있다. 헤벌쭉... ^^ (이런 큰 관심을 보이는 주제에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정약용의 생가조차 가보지 못했다. 가족여행이나 예전 회사에서 워크샵을 빙자해 가졌던 MT 때 수도 없이 지나쳤던 조안터널, 두물머리... "정약용 생가" 라는 이정표 역시 수도 없이 많이 마주쳤었는데...)
선비를 살찌웠다는 생선 - 청어. 값이 싸고 맛이 좋아 가난한 이들이 즐겨먹었다는 청어를 먹어 본 기억은 없다. 사실 "청어" 하면 서양이 떠오른다. 네덜란드였던 것 같다. 숙취 해소를 위해 절인 청어를 먹는단다. 그 외에도 여러 서양 고전소설에서 청어나 절인 청어를 만났던 것 같다. 럭셔리한 연어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나에게 청어는 서양에서 즐겨먹는 생선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요즘은 주로 꽁치로 만든다는 과메기의 원조가 실은 청어라는 걸 알게 된 건 몇 년 되지 않았다. 오래 전 서민들의 식탁을 풍성하게 해줬던, 흔한 생선이었던 청어가 지금은 국내 연안에서 거의 자취를 감췄다는 슬픈 이야기다. 녀석들은 대체 어느 바다를 헤매고 있는 걸까?
영남산 청어와 호남산 청어의 척추뼈 마디 수까지 세어가며 구분했던 현산어보의 숨은 조력자, 정창대의 정체가 몹시 궁금하다... 그는 누구일까? 그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4권과 5권을 구입해서 읽어야 할 텐데... 까마득하다...
|